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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9월 극지연구소(소장 김예동)는 지구환경변화와 극지연구의 중요성에 대한 이해 및 과학문화 확산을 위한 대국민사업의 일환으로 예술가, 작가들을 대상으로 “Pole to Pole Korea 2006 남극연구체험단” 지원자를 모집했다. 대상은 사진가, 소설가, 시인, 화가 등이 었으며 필자는 수중사진을 겸한 사진가 부문에 선발되는 행운을 가질 수 있었다.
필자는 남극에 체류하는 동안 30회에 걸쳐 극지 다이빙을 실시했으며 남극의 자연환경 및 세종과학기지와 기지대원들의 모습을 기록했다.
 
한국에서 세종과학기지까지
2007_nam_02.jpg무려 30시간이 넘는 비행이었다.
인천에서 로스앤젤래스를 거쳐 페루의 리마, 칠레의 산티아고를 경유해 지구의 땅 끝이라 할 수 있는 남미 최남단 푼타아레나스에 도착. 우루과이 공군수송기를 타고 킹조지섬에 있는 칠레 프레이 기지에 내렸다. 한국시간으로 11월5일 오전 출발하여 10일 새벽 3시(현지시간 9일 오후 3시)에 남극에 발을 디뎠으니 비행기를 다섯 번 갈아타느라 기다린 시간을 포함해 만 닷새가 걸린 셈이다. 
프레이 기지에서 세종과학기지까지는 고무보트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연구 체험단원은 초속 15m의 강풍을 동반한 진눈깨비 때문에 선착장이 있는 러시아의 벨링스하우젠기지에서 3시간 가까이 대피를 한 후 고무보트에 오를 수 있었다.
배를 집어 삼킬 듯 달려드는 파도에 얼마나 버텼을까!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너머로 힘차게 펄럭이는 태극기가 보이자 눈물이 핑 돈다.고향을 떠났지만 마치 이역만리 타국을 거쳐 고향으로 돌아온 기분이다. 지구 반대편 얼음의 땅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역사 현장에 내가 서 있다는 사실에 잠시 감상에 젖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세종과학기지로 가기 위해서는 어떤 경로를 이용하던 칠레 푼타아레나스에 도착해야 한다. 그곳에서 남극까지는 군 수송기 등 항공기를 이용하는 방법과 선박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군수송기는 정상적으로 이륙하기만 하면 3시간 안에 칠레 프레이기지까지 갈 수 있지만 몇 달 전에 예약을 해야 한다는 점과 남극 기상과 군대 작전 등의 돌발변수를 고려해야 한다. 실제로 수송기를 타기 위해 푼타아레나스에 머무는 이틀간 5분대기조가 되어야 했다. 숙소에 짐도 풀지 못하고 리얼타임으로 남극의 기상상태를 확인하다 OK 사인이 떨어지자 바로 공항으로 달려갔다. 이런 상황이니 굉음과 함께 요동치는 C-130 안에서 낙하병처럼 웅크리고 앉아 있어도 아무도 불평을 하지 못했다. 마음속으로 무사히 착륙하기만을 기도할 뿐. 그런데 비행기가 뜬다고 해서 남극에 도착한다는 보장은 없다. 갑자기 변하는 남극의 기상상태로 푼타아레나스로 회항하는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이다. 1985년 12월말 미국인 부부 네 쌍을 태운 비행기가 무리하게 착륙을 시도하다 조종사와 부조종사를 포함 열명이 사망한 참사 이후로 항공기의 이착륙이 더욱 엄격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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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박을 이용하면 70~90시간 정도 항해 해야 세종기지에 도착할 수 있다.
마젤란 해협, 비글해협을 빠져나오면 지구상에서 가장 험난한 바다인 드레이크해협이 도사리고 있다. 폭이 2km에서 200m까지 급변하는 비글해협을 빠져나오면서 양쪽으로 깎아지른 절벽, 옥색의 빙하, 폭포, 원시림 같은 절경에 도취되어 천당을 경험한다면 드레이크해협에서는 지옥을 겪어야만 한다. 경험이 있는 기지대원에 의하면 드레이크해협 초입에서부터 포효하던 바다가 남위 50도를 지날 때는 사납게 날뛰더니, 60도에서는 미친 듯이 소리치며 배로 뛰어 들더라는 것이다. 이정도면 아무리 강한 뱃사람이라도 멀미를 참을 수 없고 죽음의 공포를 겪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세종기지로 많은 물자를 수송해야할 경우 또는 학술 조사를 위한 경우가 아니면 선박을 이용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남극이라고 부르는 개념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다.
천문학자들은 하루 종일 낮이나 밤인 때가 생기는 남위 66도33분에 있는 남극권 경계선 안쪽을 남극이라 부르고 생물학자들은 남극대륙 근처의 찬 해수와 북쪽 바다의 따뜻한 해수가 만나는 폭 40km의 남극 수렴선 안쪽을 남극으로 본다. 일반적으로는 남위 60도 안쪽을 남극이라 부른다. 사우스섀틀랜드 군도 킹조지섬에 자리 잡은 세종과학기지는 남위 62도13분에 위치하고 있다.
 
세종과학기지의 아침
창 너머로 여명이 밝아 온다.
잠깐 눈을 붙였다 생각했는데 벌써 아침인가? 얼떨떨한 생각에 시계를 찾아보니 새벽 3시. 그제서야 남극에 왔음을 실감한다. 
북반구와 반대로 계절상 여름으로 치닫고 있는 11월. 남위 62도 13분에 위치한 세종과학기지에는 해가 밤 10시경에 졌다가 새벽 3시경에 뜬다. 남극이라 하면 24시간 낮이거나 24시간 밤인 날이 되풀이 되며 해가 지지 않는 백야(白夜)를 생각하기 쉽지만 이런 현상은 남위 66.5도 아래 지점에서부터 생긴다. 그러다 남위 90도 남극점에 이르러서는 여섯 달이 밤이 되고 여섯 달이 낮이 된다. 
숙소 문을 열고 나선다. 바람이 세차게 분다. 내친 김에 기지 뒤에 위치한 해발 252.2m의 설악봉으로 향했다. 겹겹이 옷을 껴입은 채 발목까지 빠지는 눈을 헤치며 나가느라 움직임은 둔하지만 마음만은 가볍다. 기지대원들은 인근의 봉우리들에 친숙한 우리 이름을 붙였다. 해발 266.3m로 가장 높은 백두봉을 위시하여 설악봉, 태백봉, 지리봉, 한라봉이 뒤를 잇는다. 설악봉에서 내려다본 기지는 흰눈과 강한 색채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바다 너머로 칠레 프레이기지의 불빛이 한눈에 들어온다. 꽤 먼 거리이지만 상당히 가깝게 느껴진다. 남극은 공기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깨끗해 멀리 떨어진 곳도 가깝게 느껴진다. 이 곳에 있는 동안은 거리에 대한 개념을 다시 잡아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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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지척에서 금속성의 날카로운 소리가 들린다. 감상에 젖어 있다가 깜짝 놀라 주위를 둘러보니 도둑갈매기라 불리는 스큐아 두 마리가 지척에 도사리고 있다. 상당히 경계하고 있는 자세다. 아마 자신들의 권역에 내가 들어온 것을 경고하는 듯 했다.
스큐아는 맹금류이다. 도둑갈매기라 불리게 된 것은 이 녀석들이 펭귄 알을 훔쳐 먹는 것을 즐기기 때문이다. 스큐아는 펭귄 알 뿐 아니라 펭귄을 사냥하기도 한다. 특히 무리에서 떨어진 병든 펭귄이 있으면 몇 마리가 한번에 달라 들어 살점을 뜯어 먹어버린다.
겨울을 따뜻한 곳에서 지내고 12월초 번식기를 앞두고 남극으로 돌아온 스큐아는 둥지를 만드느라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다. 자칫하면 폭격기 마냥 날아들어 강한 부리로 머리를 쪼아 될 수 있기에 스큐아가 경고할 때는 자리를 피하는 게 상책이다. 기지에서 연구원들이 스큐아 생태조사를 나갈 때는 헬멧을 쓰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지만 손을 쪼여 큰 상처를 입는 경우도 가끔 있다고 한다. 좋은 이미지를 지니지 못한 새이지만 스큐아도 남극의 생태에 일정부분 기여를 한다. 이들의 배설물은 남극의 식물군이라 할 수 있는 지의류와 선태류에 대한 중요한 유기물 공급원이기 때문이다. 해변으로 내려오자 무리에서 떨어진 펭귄 한 마리가 보인다. 펭귄은 집단생활을 하는 데 어떤 이유로 무리에서 떨어진 것일까. 가까이 다가가니 날지 못하는 날개로 홰를 치며 ‘끄억 끄억’ 소리를 지른다. 펭귄이 놀랐을 때는 가까이 다가가면 안 된다. 짧은 다리로 ‘뒤뚱뒤뚱’ 도망 가다가 자갈에 채여 발목을 부러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상처 입은 펭귄은 호시탐탐 노리는 스큐아의 눈길을 벗어날 수 없다. 
잠시 후 기지 주변으로 음악소리가 울려 퍼진다. 시계를 보니 오전 7시. 대원들의 기상시간이다. 여기저기서 간밤의 안부를 묻는 인사를 시작으로 세종과학기지는 활기를 찾는다.
 
극지로 떠나온 대륙
남극을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얼음이지만 남극대륙이 처음부터 얼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땅처럼 대기에 노출된 적이 있었다. 
1억8천만 년 전 지금의 아프리카, 남미, 호주, 인도, 남극대륙이 뭉쳐져 있던 거대한 대륙(곤드와나 대륙)이 서로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이중 가장 중심부에 있던 땅덩어리가 지각 이동을 통해 아래로 내려가며 지구 가장 남쪽 끝에 자리를 잡았다. 남쪽 끝으로 유배를 떠난 땅덩어리에 번성하던 식물과 동물은 혹한의 환경으로 서서히 멸종해 버렸다. 이 땅덩어리가 바로 지금의 남극대륙이다. 
제임스 로스가 이끄는 영국의 남극탐험대에 참여한 생물학자 제임스 후쿠(James D. Hooker)는 1851년 남극의 식물상이 과거의 동일한 거대(巨大) 대륙으로부터 유래했다는 학설을 발표했으나 당시에는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화석을 통해 학설의 증거가 속속 발견되기 시작했다.
이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남극 종단 산맥에서 완전한 골격형태로 발견된 공룡의 선조 리스트로사우루스의 화석이다. 학자들이 주목한 점은 이 파충류의 화석이 아프리카, 인도지역에서도 발견된다는 사실이다. 이는 당시 아프리카와 인도, 그리고 남극대륙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다는 명백한 증거가 된다. 땅이 연결되지 않고서는 헤엄칠 수 없는 리스트로사우루스가 남아프리카로부터 4020km나 떨어진 남극대륙까지 이동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후 지구에서는 파충류가 대형화를 계속해 공룡의 전성시대를 맞이하지만 남극으로 이동한 대륙은 혹한의 추위로 빙하가 덮이면서 육상 생명체가 멸종하고 말았다.
대륙이 이동한 후 땅에 쌓이기 시작한 눈은 그 무게로 차곡차곡 다져지면서 아프리카 면적의 절반 정도 크기인 남극대륙의 98%에 평균 2,160m의 얼음 층을 만들었다. 이 얼음 층은 지구 전체 담수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결국 남극의 얼음은 대륙이동으로 극점으로 이동한 남극대륙에 오랜 세월을 두고 쌓인 눈이 굳어진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만약 이 얼음들이 모두 녹아버리면 어떻게 될까?
지구 해수면은 60~70m 정도 상승하여 지구의 큰 재앙이 닥칠 것이라 한다. 아마 1억8천만 년 전 극지로 유배를 떠나며 남극대륙의 생명체가 멸종하듯 지구상의 생명체가 새로운 질서로 재편될 것이다.
 
얼음의 대륙 남극
킹조지 섬 마리안 소만(小灣)의 빙벽을 둘러보기 위해 고무보트에 올랐다.
기지 선착장을 출발 유빙(遊氷) 사이를 가르며 나아가는데 “꽝”하는 천둥소리와 함께 만년설로 뒤덮인 빙벽이 무너져 내린다. 남극의 여름이 가까워 오면서 강하게 내리쬐는 햇빛을 견디지 못한 빙벽이 무너지며 내지르는 소리이다. 거대한 얼음 덩어리가 짙푸른 바다로 떨어지자 그 엄청난 무게로 해수면이 요동을 친다. 얼떨결에 얼음덩이를 집어삼킨 바다는 단번에 삼키지 못하고 토하듯 뱉어 낸다. 잠시 후 솟구쳐 오른 얼음덩이를 다시 끌어당겨 보지만 이내 놓아버리고 만다. 몇 번을 되풀이하고서야 바다는 야금야금 녹여 먹을 셈으로 얼음덩이를 놓아준다. 빙벽에서 떨어진 얼음덩이가 바다를 떠도는 유빙으로 독립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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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_nam_06.jpg남풍이 불어 킹조지섬을 떠도는 유빙이 세종기지가 있는 마리안 소만(小灣) 안으로 몰려들면 마치 조각공원에 온 듯하다. 몇 년 전 수 천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적도 인근의 팔라우공화국을 보트를 타고 돌아본 적이 있었다. 당시 아기자기하게 펼쳐진 섬들의 모양을 보며 고래, 코끼리, 비행기, 잠수함 등 마음 내키는 대로 이름지어며 신기해했었는데 당시의 기기묘묘함보다 더욱 다양함을 느낀다. 파도와 바람에 씻기고 깎여진 유빙은 자연이 만들어낸 최고의 조각품이다. 또한 이 조각품들은 보는 각도에 따라 햇빛에 반사되는 색과 모양새가 제각각이다.
 
유빙을 보고 있으면 얼음은 흰색이라는 고정관념이 여지없이 무너진다. 이 곳의 얼음은 푸른색이나 옥색이라고 함이 옳을 듯 하다. 이는 남극 얼음이 물이 얼어서 된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내린 눈이 쌓이고 다져져서 만들어진 탓이다. 남극 얼음 속에는 눈과 눈이 다져질 때 만들어진 기포가 있으며 이 공기방울이 햇빛을 받으며 산란과 반사를 통해 다양한 색으로 나타난다. 남극 얼음 속에 들어 있는 공기방울은 남극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에게는 소중한 연구자료이다. 시추공을 이용하여 평균 두께 2500m 에 이르는 남극 얼음을 캐어낸 후 얼음 사이의 공기의 성분을 분석하면 눈이 내릴 당시 남극의 대기환경 뿐 아니라 자연환경을 연구할 수 있다. 공기방울 속에 이산화탄소가 많으면 눈이 내린 당시 지구가 따뜻해졌다는 반증이 되고, 화산재가 섞여 있으면 인근에서 대규모 화산활동이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남극의 얼음은 얼음이 생성될 당시의 공기, 기후, 화산활동 등 지구환경의 비밀을 간직한 ‘타임캡슐’이 된다. 세계 여러 나라의 과학자들은 남극의 얼음을 연구하여 지구환경의 비밀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구상 어떤 곳도 이처럼 과거 지구환경을 완벽하게 보관하고 있는 곳은 없다. 
남극의 얼음은 이곳 월동대원들의 단조로운 생활에 활력을 주기도 한다. 얼음을 조각내어 유리컵에 담아 귀를 대어 보면 ‘톡 톡’ 공기방울이 터지는 소리가 들린다. 유리잔에 든 얼음이 전하는 소리를 듣는 일은 다소 낭만적일 수 있다. 또 이 얼음을 갈아 만든 팥빙수는 모두가 즐기는 별식이기도 하다. 일본 고급술집에서 남극 얼음을 넣은 칵테일이 고가에 판매되기도 하고 과거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자는 바다를 떠도는 유빙을 끌어와 식수를 만들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빙산은 유빙 중 덩치가 큰 것을 지칭한다. 전체의 아주 미약한 부분만 드러난 경우를 말하는 ‘빙산의 일각’을 실증해 볼 생각으로 수면으로 노출된 높이 15m 정도의 빙산 아래로 다이빙해 들어갔다. 수면 아래부터 빙산의 얼음벽면을 타고 미끄러져 내린다. 30m 정도까지 내려가다 아래를 보니 끝을 가늠할 수 없다. 어쩌면 내가 지금까지 내려오며 본 것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극에서 다이빙하기
남극 세종과학기지에는 연구원들의 활동을 돕기 위한 잠수장비가 구비되어 있다.
별도의 장비를 가지고 가지 않아도 남극에서 잠수 활동이 가능할 정도이다. 
컴프레서와 공기탱크를 비롯해 후드 일체형 드라이 슈트, 동계용 호흡기, 풀 페이스 마스크 등이 2세트씩 있으며 이외의 각종 장비 및 액세서리, 수선용 공구 등이 갖추어져 있다. 필자는 한국에서 드라이슈트, 호흡기, 풀페이스 마스크 등을 가져갔지만 드라이슈트는 주로 기지에서 보유하고 있는 후드 일체형 제품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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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온 영하 1.6도와 거센 바람이 몰아치는 외부의 환경에 견디기 위해서는 입수 전 준비가 철저해야 한다. 먼저 보온용 양말과 그 위에 덧신을 신고 아래 위로 두벌씩의 내복을 껴입었다. 그 위에 내피를 입고 슈트를 입었다. 일체형 후드를 쓰기 전에는 보온을 위해 전용의 후드 내피 모자를 썼다. 노출된 손에는 천으로 된 장갑을 낀 다음 슈트 손목 실 안쪽에 플라스틱 링을 넣고 두꺼운 고무장갑을 덮어 씌워 밀착시켰다. 슈트가 일반적인 드라이슈트에 비해 두꺼운 편이라 한동안 적응하느라 애를 먹었지만 보온성이 뛰어나 물속에서는 그다지 추위를 느낄 수 없었다. 다만 장갑을 낀 손 부분의 보온성이 떨어져 손이 시리다 못해 통증으로 마비될 정도였다.
 
대개의 다이빙은 보트 다이빙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보트를 타기만 하면 어느 정도 편안한 다이빙을 할 수 있지만 잠수동에서 50m 정도 떨어진 선착장까지 이동하는 것이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었다. 특히 눈이 내린 날은 장비를 들고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눈밭을 걸어 이동해야 했다.
남극에서 체크다이빙 형식의 첫 다이빙을 실시했을 때 바다는 유빙으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 겨울동안 꽝꽝 얼었던 빙벽과 빙산이 녹아 쪼개지며 얼음덩어리들이 만들어지고 때마침 불어온 강풍에 밀려 해안으로 몰려든 때문이다. 얼음덩이를 손으로 밀어내며 공간을 만들어 입수를 한 후 가파른 경사면을 따라 30m 정도 내려갔다. 계기판을 보니 영하 1.5도. 5분 정도 지났을까... 상승을 시작하는데 호흡이 뻑뻑해진다. 어느 순간부터 호흡기의 1단계가 얼어붙으며 오버 플로우가 생기더니 그 영향이 2단계에까지 미치기 시작했다. 함께 다이빙을 한 나승구 강사를 돌아보니 나 강사도 문제가 있는 듯 보였다. 침착함을 유지하며 수면으로 떠오르자 수면에 몰려 있던 유빙들이 차가운 기온으로 인해 서로 엉겨 붙어 얼어 있었다. 공기 잔압이 부족한 상태에 상승지점이 얼어 있다면 당혹스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입수한 후 유빙이 결빙되지 않은 틈을 찾아 손으로 틈을 벌린 후 수면으로 올라왔다.
 
포식자 표범해표
남극권에서 발견되는 해표(바다표범)류에는 웨델, 크랩이터, 표범, 코끼리, 로스 해표의 다섯 종이 있다. 이중 대륙 건너편 로스 해에 서식하는 로스 해표를 제외한 4종은 우리나라 세종과학기지가 있는 사우스 셰틀랜드 군도 인근이 주 무대이다. 이중 웨델이나 크랩이터 해표는 얼마나 수가 많은지 바닷가를 걸을 때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아무렇게나 누워 자고 있는 녀석들에 발이 걸려 넘어질 정도이다. 
해표라는 이름에서 풍기는 늬앙스 대로 이들은 남극바다의 먹이사슬에서 강력한 포식자의 지위를 가진다. 이중 다른 종들이 크릴이나 오징어 물고기 등을 잡아먹는 등 성격이 비교적 온순하다면 표범해표는 상당히 사나운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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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4m에 이르는 회색의 몸에 검은색 얼룩무늬가 새겨져 있다. 몸은 물속에서 쉽게 움직이도록 유선형이며 머리와 턱이 크고 허리는 마치 쥐라기 공원에 나오는 육식공룡처럼 불룩하다. 한번씩 수면위로 모습을 드러내며 입을 ‘쩍 쩍’ 벌리면 시뻘건 입안에 돋아 있는 번뜩이는 이빨의 날카로움에 소름이 돋을 정도이다. 
표범해표는 다른 해표나 오징어 등을 잡아먹기도 하지만 펭귄을 주식으로 한다. 표범해표의 사냥장면을 비디오로 본 적이 있다. 녀석들은 물위에 떠있는 펭귄 무리 속으로 은밀하게 잠입. 그중 한 마리를 낚아챈다. 강력한 턱에 걸려든 펭귄은 잠시 발버둥을 쳐보지만 벗어날 수가 없다. 펭귄을 입에 문 표범해표는 두꺼운 펭귄 가죽을 벗겨내기 위해 수면에 이리저리 패대기를 쳐댄다. 잠시 후 주위 바다는 벌겋게 물들고 수면에는 찢겨진 펭귄가죽만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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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범해표가 사람을 공격하는 경우도 있다. 세종과학기지 인근에 있는 러시아 벨링스하우젠 기지대원들과 함께 탐사에 나섰을 때 섬 인근 유빙위에 표범해표 세 마리가 잠을 자고 있었는데 그중 한 마리가 스르르 물속으로 사라졌다. 모두들 사라진 한 마리의 행방보다는 유빙 위에 있는 다른 두 마리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갑자기 러시아 대원들이 탄 보트로 표범해표가 몸을 솟구쳐 올렸다. 보트에 올라타려는 듯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 인간들에 대한 단순한 위협을 넘어선 적극적인 공격이었다. 다행히 러시아 대원들이 노를 가지고 해표를 밀친 후 전속력으로 그곳을 빠져나왔지만 300kg 이 넘는 해표가 보트에 올라타서 요동을 쳤다면 보트가 뒤 짚어졌을 테고... 물에 빠진 사람들에겐 끔찍한 일이 벌여졌을 것이다. 2년 전에는 영국기지의 스쿠버다이버가 표범해표의 공격으로 사망한 사고가 발생했었다. 
사실 남극에서 수중활동 시 차가운 수온에서 오는 스트레스보단 표범해표의 존재가 더욱 큰 부담이었다. 
11월 22일 해양 생태계를 살펴보며 수중촬영을 하고 있는데 물속에서 ‘끄~윽 꾸르륵’ 해표 소리가 들렸다. 그 존재가 표범해표인지 다른 해표인지 구분할 수는 없었지만 자신의 영역을 침범했음을 경고하는 해표의 소리만은 분명했다. 물속은 공기 중보다 소리 전달이 빠르기에 소리의 방향을 분간해내기가 힘들다. 우리가 소리의 방향을 아는 것은 양쪽 귀에 음파가 도착하는 시간이 다르기에 각각의 귀에 소리가 도착하는 시간의 차이로 방향을 분간할 수 있다. 그런데 물이라는 매질에서는 공기보다 4배나 빠르게 소리가 전달되므로 양쪽 귀에 다다르는 시간차를 분간해내기가 힘들다. 어느 방향에서 나는 소리인지 알 수 있다면 방비를 할 수 있을 텐데 방향을 짐작할 수 없으니 앞 뒤, 좌 우, 위 아래를 목이 아플 정도로 두리번거릴 수밖에 없었다. 혹여 수중사진기를 놓칠까 끈을 손목에 감은 채 물속을 빠져나오며...
표범해표도 자연의 일부이며 그들의 삶의 터전을 지키고자 하는 것은 당연한 본능이자 권리일 텐데 내가 그들의 권역을 침범한데 대한 경고는 남극환경을 지키고자 하는 자연의 경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남극의 바다 속
남극의 생명은 바다에서 시작된다.
연간 평균기온이 영하 23도인 육지에 비해 남극해역은 일년 내 영하 1~2도로 수온 변화가 극히 적은 매우 안정된 환경이다. 게다가 편서풍에 의해 형성된 거칠고 차가운 남극순환해류가 남극대륙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 다른 바다의 물은 남극권 안으로 섞여들 수가 없다. 따라서 생물들이 차가운 물에 생리적으로 적응만 한다면 남극해역 만큼 물리적, 화학적으로 안정되게 살수 있는 공간은 드물다는 것이 학자들의 견해이다. 우리나라를 예로 들 때 부산 해역의 연간 수온 변화폭은 20도 이상을 오르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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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수온에 민감한 해양생물들은 자기가 살 수 있는 수온을 찾아다니느라 삶의 사이클이 바빠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안정적인 환경으로 인해 남극 바다 속은 오랜 세월에 걸쳐 해양생물들이 다양한 종의 분화를 이루어냈다. 이번 남극 체류기간 중 30회에 걸쳐 남극 바다 속을 둘러보았다. 남극 바다의 특성중 하나는 조간대가 형성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대개의 바다가 만조와 간조의 차로 물에 잠겼다가 외기에 노출되기를 반복하는 조간대 갯바위 등에 따개비 등 부착성 생물이 자라고 있지만 남극은 겨울철 바다의 결빙으로 인해 결빙층까지는 해양생물이 살수가 없다. 그런데 그 이하부터는 수심에 따라 종을 달리하는 다양한 해조류들이 숲을 이루며 사이사이로는 삿갓조개, 남극대구, 성게, 말미잘, 해면, 불가사리 등의 생명체가 먹이사슬이라는 틀 속에서 공동체의 삶을 이루고 있다. 남극 바다는 해양생물의 가장 기초 생산자인 해조류가 천국을 이루고 있다. 10m 아래부터 다년생 갈조류가 무성하다면 얕은 수심대에는 1년생 녹조류들이 자라고 있다. 계절상 초여름인 요즘 얕은 수심대에는 1년생 녹조류가 암반에 부착하기 시작했다. 이들 해조류들은 식물성 플랑크톤과 함께 광합성을 통해 산소와 탄수화물을 생산하여 남극 바다를 풍요롭게 할 뿐 아니라 이산화탄소를 소비하면서 지구 온난화를 막아준다. 남극바다 식물플랑크톤의 광합성을 연구하는 송환석 연구원은 다른 바다의 식물성플랑크톤들은 광합성을 위해 흡수한 이산화탄소가 다시 대기 중으로 돌아가는 순환이 이루어지지만 남극바다에 서식하는 식물플랑크톤들은 차가운 수온으로 인해 이산화탄소를 흡수한 채 바다바닥으로 가라앉아 버리기에 남극과 북극 등 극지 바다가 지구에서 가장 많은 이산화탄소 소비지역 중 한 곳이라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수심 20~30m 바닥 면으로 내려가자 부드러운 펄 층이 펼쳐진다. 대개의 바다와 비슷한 환경이지만 군데군데 움푹 패인 흔적이 있다. 거대한 빙산이 흘러 다니다 바닥 면에 걸린 자국이다. 거대한 빙벽에서 떨어져 나와 만들어지는 빙산은 남극 해역을 떠다니며 조금씩 녹아 해수로 흡수되지만 발생초기에는 바다 생태계에 많은 영향을 준다. 물 아래로 잠긴 부분을 살펴보기 위해 빙산벽면을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매끈하다는 느낌보다 얼음면이 다소 거칠다. 해수에 깎이고 쓸려나간 흔적들이다. 빙산은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움을 너머 신비로움이 가득하다. 남극의 얼음은 오랜 세월 동안 내린 눈이 다져져 만들어진 결정체이다. 이 얼음 속에는 눈이 내린 당시의 공기입자가 들어 있다. 얼음덩어리 빙산은 해수 속에서 녹으며 공기방울을 아지랑이처럼 뿜어 올린다. 물속에서 방울방울 올라가는 공기방울을 올려다보며 수 십 만 년 얼음 속에 갇혀있던 공기방울의 자유를 찬미한다. 
현재 남극에는 세계 각국 연구원들의 노력으로 남극바다의 신비가 조금씩 벗겨지고 있지만 아직 인류가 방문하고 연구한 부분은 남극의 극히 일부분일 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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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승구 강사
이번 남극에서 스쿠버 다이빙시 버디가 된 나승구 강사는 우리나라에서는 독보적인 극지 다이버이다.
나 강사는 1970년 전북 남원 출생으로 1994년 특전사 중사 제대 후 PADI 강사가 되어 전라북도 전주에서 스쿠버 다이빙전문점을 열었다.
IMF 이후의 불경기로 새로운 사업 방향을 모색 중이던 나 강사는 2001년 다이빙전문점을 정리하고 극지연구소와의 인연을 통해 남극 세종과학기지와 북극 다산기지의 연구 다이버 일을 맡게 된다.
나 강사는 1년간 세종과학기지에 체류한 2002년에만 남극에서 1백회의 다이빙을 하는 등 남극 5차례, 북극 3차례 방문을 통해 양 극지에서만 총 3백회에 이르는 다이빙을 기록하고 있다. 나 강사의 임무는 수중 모니터링 촬영, 수심별 생물상 변화 촬영, 해조류 샘플링, 수심별 퇴적물 샘플링, 수중 측정 장비의 설치 및 교체 등이다.